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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있다. '어린왕자'. 어린왕자를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바오밥 나무의 존재를 잊고 살았었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동화 속에만 나오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현실에 존재하던 바오밥. 이번 여행을 하면서 사파리, 잔지바르, 빅토리아 폭포 등 여러 번 바오밥 나무를 만났다. 하지만 어린왕자 삽화에 나오는, 그리고 인터넷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사진 만큼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종단의 마지막 종착지인 남아공에 도착하고 나서도 마다가스카르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오직 바오밥 나무를 보기 위한 것치고는 비행기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론리플래닛은 영어라서 읽기 싫었고, 마다가스카르에 다녀온 블로거들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공통점을 찾아냈다. 하나같이 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더 머무르고 싶었다는 것. 그래, 마다가스카르로 가자. 그렇게 결심했다.

 

아프리카에서 마다가스카르로 진입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케냐 항공을 타고 나이로비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나이로비를 거쳐 마다가스카르로 들어가는 비효율적인 동선이 싫어 그냥 조금 더 비싼 직항 비행기를 끊었다. 왕복 75만원. 좀 더 의사결정을 일찍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흥청망청 백패커니깐…

 

마다가스카르 상공에 진입하니 푸른 초원과 산들이 펼쳐졌다. 아무런 근거 없이 왠지 에티오피아 같은 황폐한 토양을 생각했던 내 상상과는 180도 달랐다. 푸른 초원과 군데 군데 위치한 작은 집들, 그리고 포장도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 황토색 길.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상상했던 아프리카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안타나나리보(Antananarivo)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로 현지인들은 타나(Tana)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안타나나리보 공항에 도착해서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0일짜리 비자를 내어주었다(27 달러). 마다가스카르는 무비자인 줄 알았었는데, 작년 12월부터 비자 값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행은 일찍일찍 다니도록 하자.. 짐을 찾고 ATM에서 돈을 뽑고 공항 밖으로 나서니 역시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택시 기사들의 영업 전쟁이 시작되었다. 셔틀 버스 정류장은 공항에서 나서서 오른쪽에 있는데 내가 그 방향으로 걸어가니 택시 기사들이 그 쪽으로 가면 안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택시 기사들이 아니라고 하니 더욱 확신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었고, 역시나 멀리서부터 보이던 버스가 셔틀 버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는 택시를 탈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셔틀 버스 기사님한테 숙소 이름을 말하면 친절하게 숙소 앞에서 내려주기 때문이다. 10,000아리아리(3,700원).

 

숙소는 어제 호스텔 월드에서 봐두었던 Madagascar underground에서 묵기로 했다. 9인실 남성 전용 도미토리. 공용 화장실. 와이파이 빠름. 26,000아리아리(10,000원). 저녁에 베란다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한 중국 여자가 다가왔다. 이름은 구아바. 이름이 특이해 내가 제대로 들은건지는 확신이 안선다. 이 중국 여자는 마다가스카르에 벌써 2번 째 오는 것으로 이전에는 2달이나 지냈다고 한다. 도대체 마다가스카르는 어떤 매력이 있길래 2달씩이나 있었는데도 다시 오게 된 걸까? 앞으로 3주의 여행동안 그 매력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중국 여자는 일본 여자 한 명이 나처럼 오늘 도착했으니 같이 다니면 좋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그 일본 여자는 케이프타운에서 아주 잠깐 마주쳤었던 사람이었다. 이게 또 이렇게 연결되다니.. 세상은, 아니 아프리카는 참 좁다. 아무튼 그 일본 여자는 내가 포기했던 나이로비를 경유하는 23시간짜리 비행기를 타고 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난 내일 모론다바(Morondava)로 떠날 예정인데 생각이 있으면 내일 오전 중으로 말해달라고 제안하고 헤어졌다.

 

안타나나리보에 적응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나라를 옮겨다닐 때에는 점진적인 변화만을 겪었었다. 에티오피아와 케냐는 생활 수준이 많이 차이나지만, 아디스 아바바에서 나이로비로 이동할 때에는 각 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었다. 케냐에서부터 말라위까지 내려갈 때에는 조금씩 가난해지다가, 말라위에서 잠비아, 나미비아, 남아공을 이동할 때에는 점진적으로 생활 수준이 좋아졌다. 하지만 오늘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사는, 마치 유럽같은 남아공에서 제일 못 사는 마다가스카르로 오니 매연 속에서 숨쉬는 것부터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Shoprite(체인 슈퍼마켓)는 남아프리카와 달리 무척 작아 살 것이 별로 없었고,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옷차림이 정말 가난해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아저씨가 서 있었고, 옆으로는 벤츠 자동차가 지나가서 벌써부터 빈부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셔틀을 타고 오는 길에 멋있어 보였던 기차역에 찾아가 구경 좀 하다가 길거리 노점상에서 저녁으로 국수를 사먹었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당연히 국수 하나를 사먹는 데도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옆에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저씨가 4,000아리아리라고 알려주었다. 아마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영어가 서툴러 잘못 말한 것 같다. 내가 4,000아리아리를 내미니 주인이 선뜻 내 돈을 받지 못했다. 알고보니 400아리아리(150원)였던 것이다. 두 그릇을 먹어서 배가 터지겠는데도 300원이라니.. 환율 계산을 잘못한 줄 알고 몇 번이나 계산기를 두드려 봤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그 후 이곳의 물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국수를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레스토랑, 베이커리에 다 들어가보며 가격을 확인해보았다. 왠만한 레스토랑의 음식은 10,000아리아리가 넘었고, 비싼 곳은 30,000아리아리가 넘었다. 아무리 길거리 음식과 레스토랑 음식의 가격간에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로컬 음식을 먹으면서 다닐지, 아니면 맛집을 찾아 다닐지 여행의 방법을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과는 또 달랐다. 말레이시아, 아프리카, 인도, 아랍 사람들이 모두 섞여 독특한 얼굴을 가졌다. 그래도 그 중에서 말레이시아 사람과 가장 흡사한 것 같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지금 동남아시아에 온 것인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첫인상은 굉장히 좋았다. 다들 예의바르고 웃으며 대해주었다. 물론 중국인을 놀리는 말인 '칭쳉총' 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웃으며 대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말이 안통해서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는 웃으면서 '쟤는 눈이 왜이렇게 작아'라고 말했을수도 있다.

 

오늘은 여행 100일 째 되는 날이다. 아직 아프리카도 다 구경하지 못했는데 벌써 100일이 지났다니.. 그래도 오늘은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미소에 기분이 좋아졌다. 100일 선물로 마다가스카르를 받은 것 같다.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이 나는 곳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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