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무래도 배낭여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덫에 걸려버린듯 하다. 능귀 바다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맛있는 음식만 먹고, 선베드에 누워 책 읽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피부에 화상을 심하게 입어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출발한 이후 40일 동안 너무 열심히 돌아다녀서 휴식이 필요한 것이기도 한 것 같다. 뭐가 됐든 난 지금이 좋다. 아무 생각, 아무 걱정없이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게 좋다. 이 여행이 끝나면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 행복한가보다.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에 힐튼 리조트에 갔다. 오전에 능귀를 걸어서 한바퀴 돌았는데 힐튼 앞 바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고, 같은 선베드에 누워도 더 좋은데 눕겠다는 심산이었다. 난 선베드만 렌탈하거나 음료수를 시키면 선베드를 이용할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힐튼에서는 선베드만은 빌려주지 않았고 1 day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과 드링크 포함, 60달러. 점심(부페겠지?)과 드링크를 생각하면 아침에 와서 하루종일 이용하는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3시. 그냥 숙소 앞 비치에 눕기로 했다. 선베드 렌탈 10,000실링.

뭐 힐튼 앞이나 숙소 앞이나 똑같은 능귀고 똑같이 아름다웠다... 일체유심조. 그렇게 책 읽고 바다 감상하고 있는데 삐끼가 접근했다. 아, 귀찮게 또 삐끼야.. 힐튼에 누워있으면 못들어오는데.. 그런데 삐끼의 제안이 솔깃했고, 내일 한국인 3분과 같이 배를 타고 낚시와 스노쿨링을 하러 가기로 했다. 하.. 이놈의 팔랑귀.. 4명이서 낚시, 스노쿨링, 오리발 대여를 합쳐 140,000실링. 한 사람당 35,000실링이다. 역시 여행은 여럿이 해야 비용이 절감되는 것 같다.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길래 봤더니 마사이족 청년 세 명이 마사이 댄스를 추며 놀고 있었다. 마사이 마을에서 돈을 벌기 위해 관광상품화된 춤이 아닌 진짜 자기들끼리 추고 싶어 추는 춤이었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몰라도 그들은 점프를 뛰고 웃고, 또 점프를 뛰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렇게 아무 걱정없이 여행을 다니는 나보다도 더 행복해보였다. 참 별거 아닌 일에도 즐겁고 웃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케냐를 지나 탄자니아의 마지막 행선지인 잔지바르에 올 때까지 나는 마사이 댄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보통 사파리할 때 마사이 마을에 방문하여 마사이 댄스를 보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사파리를 두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사이 마을에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항상 마사이 댄스를 못본게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오늘 단 세 명이 추는 댄스였긴 했지만 한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고, 바다에 풍덩 빠지기도 하고,

해가 약해질 때 쯤 스노쿨도 하다가,

석양과 다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놀았다.

집에 돌아와서 어깨와 등을 보니 피부가 부분부분 검은색으로 변했다. 내 생각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이젠 그냥 잔지바르 여행의 훈장이라고 생각해야겠다.ㅠㅠ

그리고 한국 집에 있을 때도 잘 안빨던 큰 베낭을 빨았다. 너무 더러워서도, 베드버그 때문도 아닌 땀냄새 때문이다. 내 땀냄새면 참을만 했을텐데 킬리만자로에 오를 때 내 베낭을 대신 날라준 포터의 땀냄새가 배낭 어깨끈에 깊이 베겨 이동할 때 마다 참기 힘들었다. 물도 잘 안나오는 숙소에서 이걸 빠느라 두 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다음 이동부터는 상쾌하게 다닐 수 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