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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엔 산 트레킹은 당일치기부터 10일 코스까지 다양하며, 나는 3박 4일 동안 하기로 피터와 계약했다. 시미엔 산의 최고봉은 Ras Dashen인데 올라가봐야 전망도 잘 보이지 않고 생각보다 별로라고 하여 그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인 Bwahit까지 오르기로 했다. 참고로 에티오피아 맥주 중에 Dashen이라는 맥주가 있는데 바로 이 시미엔 산 최고봉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이미 벌컥벌컥 마셨었지만..(D+7일편 참고)

 

아침 7시 15분에 우리 숙소 앞으로 픽업오겠다던 차는 30분이 넘어도 오지 않았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질 쯤 한 남자가 코리안?이라며 다가왔다. 그 남자는 왜 모이기로 한 호텔에 오지 않느냐고 나한테 뭐라 그랬다. 무슨 소리야.. 우리 숙소 앞에서 픽업해주기로 했으면서..-_-; 아무튼 날 버리지 않고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차가 대기하고 있는 호텔로 가서 차에 올라 탔다. 차에 타자 여행사 직원처럼 보이는 남자는 랏지에서 자는 것에서 텐트에서 자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줬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피터랑 분명 랏지에서 자는 것으로 계약했다고 따져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나와 함께 할 구성원들이 어제 밤에 텐트에서 자는 걸로 계획을 변경한 것 같다. 아무튼 나도 랏지에서 자다가 베드버그에 물린 리뷰를 많이 읽었던 터라 텐트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텐트에서 자는게 더 좋다. 여행 다닐 때 아니면 내 생에 텐트에서 몇 번이나 자겠는가? 그래도 나에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바뀌었지만, 나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제 멋대로 바꾸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곤다르 숙소였던 Crown Pension. 주인 아주머니는 관심없는 듯 하시면서도 잘 챙겨주시고, 일하는 여직원은 수줍은 듯 친절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바로 옆에 있는 숙소가 더 좋다..]

 

차는 여기저기를 돌면서 사람들을 픽업했다. 나는 왜 픽업 안해준거지? 나를 포함 총 7명이 모였고 3명과 4명 씩 두 그룹으로 분리됐다. 3명인 그룹은 모두 체코의 한 가족으로 우리와 같이 하지 않아 사실상 나, 호주 남자 2명, 갓 군대에서 제대한 이스라엘 남자 1명과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더바르크(Debark)를 지나 시미엔 산 파크 오피스에 다다르자 또 약속했던 것과 말이 바뀌었다. 노새(mule)를 제공하지 않으니 짐이 많은 사람들은 필요한 경우 추가 요금을 내서 노새를 빌리라는 것이었다. 다들 노새만 믿고 짐을 엄청 가져왔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체코 가족 중에 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주 강하게 항의했고, 피터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울먹울먹거리면서 짐을 다 메고 다녔을텐데..(절대 돈을 더 내진 않았겠지..) 외국인들과 함께하니 이런 점은 편하다. 그래도 아무튼 이 여행사는 일단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으로 찔러보는 식인 것 같다.

 

노새 문제가 해결되자 이번엔 스토브랑 쿠킹세트가 말썽이었다. 산에 오르기 전에 나와 호주인 2명(이스라엘인은 빵에 잼만 발라먹을 거라서 요리를 안할 거란다)이 쓸 스토브와 쿠킹세트를 고르고 있었는데, 여기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200비르만 주면 캠핑장에서 다 빌려줄 테니 어서 빨리 올라가자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돈을 왜 더 내..-_-; 이번엔 내가 나서서 분명 스토브랑 쿠킹세트가 다 포함된 것으로 계약했다고 따졌다. 그러면서 어제 피터가 써준 계약서(영수증)를 보여주려고 꺼냈다. 그런데 계약서에 스토브와 쿠킹세트 얘기가 없다! 분명 빌려주기로 했었는데 구두로만 말했었나보다. 나는 몰래 계약서를 다시 집어넣었다.-_-;; 그러자 호주인 한 명이 계약서를 꺼내 확인시켜주어 이 상황도 정리됐다. 호주인이 없었으면 생쌀을 씹어먹을 뻔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Tip: 에티오피아에서는 계약서에는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자세하게 적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생쌀과 생파스타를 씹어먹을 수 있음!

 

[Park headquarter의 모습. 이곳에서 입장료를 내야하며, 스카우트와 노새, 가이드 등을 고용할 수 있고, 트레킹 장비도 빌릴 수 있다.]

 

[Park headquarter의 한 표지판에는 각 포인트들의 고도와 더바르크(Debark)로부터의 거리가 적혀있다. 나는 3박 4일동안 부잇 라스(Buyit Ras, 3260m)에서 시작하여 브와힛(Bwahit, 4430m)까지 오를 예정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부잇 라스(Buyit Ras)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 밑에서 이리저리 방문하느라 11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카베르(Sankaber) 캠프까지 약 3시간 정도(14km) 걷는 가벼운 일정이다. 오늘 일정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

 

트레킹을 시작하려하자 갑자기 사람을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갔다. This is Ethiopia.

 

부잇 라스도 뷰 포인트답게 시작하자마자 절경이 펼쳐졌다. 몇 박 몇 일씩 트레킹을 할 것이 아니라면 부잇 라스까지 당일치기 트레킹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는 마치 오래 걸어서 도착한 것 처럼 설정샷을 찍는 것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걷는다. 드디어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스카우트 아저씨. 시미엔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스카우트를 필수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야생동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함이 가이드를 고용해야하는 표면적인 목적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 목적이 크다고 한다. AK-47 을 어깨에 들쳐 멘 모습이 든든했다. 영어를 전혀 못하셔서 가이드가 통역을 해야만 대화가 가능했는데, 언제 마지막으로 총을 쏴봤냐는 질문에 22년 전이라고 대답하셨다… 스카우트 아저씨가 든든하긴 하지만 내 몸은 더 든든한 내가 알아서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걷지 않아 원숭이 떼(Gelada baboon)들이 나타났다. 오늘 코스(부잇 라스~상카베르)에서 Gelada baboon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원숭이들은 땅바닥의 풀뿌리를 캐먹느라 분주했다. 새끼 원숭이들도 많이 보였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태어난 지 2달까지는 어미 배에 안고 키우다가 2달 이후부터는 업어서 키운다고 한단다. 우리 가이드 이름은 옐로우로 외우기 참 쉽다. 곤다르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21살 청년이다. 이렇게 학비를 벌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게다가 마음씨도 착해서 내가 점심을 안가져왔는데 자기 점심을 나눠주고, 이것저것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다.

 

[풀 뿌리를 케먹고 있는 원숭이들. 자세히 보면 사람 한 명도 있다. 아직 못 찾았다면 자세히 찾아보자.]

 

[엄마 등에 업힌 새끼 원숭이]

 

Tip: 당연한 거지만 점심은 미리 준비해서 들고다녀야 한다. 요리사를 고용한 사람은 요리사가 점심을 준비해주겠지만, 나 같이 요리사 없이 트레킹 하는 사람들은 점심에 요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침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이 당연한 것을 몰라서 굶을 뻔 했지만, 가이드가 불쌍해보였는지 삼부사를 주어 점심을 떼울 수 있었다.

 

[아, 옛날이여.. 감상에 빠져있는 원숭이]

 

[한껏 폼을 잡고 있는 원숭이 사람]

 

시미엔 산에서 바라보는 에티오피아의 경치는 참 독특했다. 산과 벌판에 나무와 풀이 거의 없어 지층이 뚜렷히 보였고, 같은 높이로 깎인 고원들이 신기했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경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에티오피아의 경치에 감탄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상카베르(Sankaber)에 도착했다. 상카베르 캠프에 가니 이미 내 텐트가 쳐져 있어서 편히 쉴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이스라엘 친구와 텐트를 같이 써야하는데, 이스라엘 친구가 갓 전역한 청년답게 자기가 가져온 1인용 텐트에서 자겠다고 하여(나도 그런 패기를 부릴때가 있었지^^) 나 혼자 넓은 2인용 텐트를 독식했다. 편하긴 한데 조금은 심심했다.

 

요리사를 고용한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저녁 노을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그룹은 주방(주황색 지붕 건물)에서 저녁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주방의 환경은 열악했다. 스토브에는 불이 잘 붙지도 않고 불도 너무 약했다.(빌려줘도 이런걸 빌려줘) 하지만 주방 환경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재료를 너무 부실하게 가져와서 어떤 음식을 해먹어야 할 지 막막했다. 오늘은 밥에 참치로 대충 해결했지만 앞으로 남은 3일이 막막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물이 부족했다. 나는 마실 물만 생각해서 2L 물 3개만 가져왔는데, 요리에 쓸 물을 생각하지 못했다. 가이드에게 요청하면 물을 주긴 하는데 물에 이물질이 둥둥 떠다녔다.ㅠㅠ 식량과 물이 부족한 최악의 트레킹이 날 기다리고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일몰을 바라보자 식량과 물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멋지다, 시미엔!

 

혼자 텐트 안에서 책을 읽다가 텐트 문을 열어보니 별이 쏟아졌다. 한창 별 사진을 찍고 있는데 풀 숲 쪽으로 가니 어떤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야생동물인줄 알고 놀랐으나 알고보니 다른 그룹의 스카우트가 그곳에서 자고 있었다. 스카우트들은 이렇게 밖에서 담요만 덮고 잔다. 산 속의 밤은 한국과 다름없이 춥고 나는 패팅에 털모자, 장갑을 끼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추운데, 이런 날 밖에서 자다니.. 나는 우리 그룹 스카우트 아저씨를 찾아 내 텐트가 한 자리 비니 내 텐트에서 자라고 권했다. 하지만 직업상 텐트 안에서 잘 수 없다며 거절하셨다.ㅠㅠ 어느 빈국을 여행하든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받는 충격은 또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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