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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제항공은 이착륙 시간 뿐만 아니라 비행 시간 내내 기내에서 핸드폰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읽을 책 하나 없이 핸드폰에 모든 것을 담아갔던 나에겐 정말 지루한 비행이었다. 하지만 지루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갖게 해주었고 비행기 안에서 별사진을 찍는 법도 터득하게 해주었다.

지상에서 별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셔터를 오래 열어두면 된다. ISO와 조리개 값을 만질 줄 안다면 더 멋진 별사진을 건질 수 있겠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내에서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내에서는 항상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봤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이번에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하면서 비행기가 참으로 자주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셔터를 열어놓은 30초 동안 기류에 기체가 흔들리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별의 별 시도를 다 해본 끝에 카메라 렌즈를 창문에 바짝 댄 다음 창문 덮개를 최대한 닫아 카메라렌즈를 고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방법을 사용할 때에는 카메라 몸체는 어깨나 배게로 지탱해주어야 한다. 창문 덮개를 닫는 방법을 사용하면 카메라 고정 외에 기내의 빛 차단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아무튼 위 사진은 뭄바이 상공에서 그렇게 얻은 사진이다. 허블망원경의 성능은 뛰어나진 않지만 엄청난 사진들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우주에 있기 때문이라던데, 그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에티오피아 상공에 진입하니 낡이 밝았다. 내 생에 최초의 아프리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에티오피아는 대부분 고원지대라고 들었는데 역시나 고원과 깊은 협곡이 보였다. 아프리카하면 황량한 사막과 푸르른 초원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는데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에티오피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도착비자를 받아야 했다. 비자는 30일 비자와 90일 비자를 만들 수 있었는데 나는 28일만 체류할 예정이라 30일 비자를 만들었다. 비자 값은 달러 뿐만 아니라 유로, 파운드 등등 여러나라 화폐로 지불할 수 있었는데 내가 가진 화폐는 달러와 유로 뿐이고 환율을 계산해보니 달러로 내는 것이 유리해서 50달러를 주고 30일짜리 비자를 받았다. 비자를 받을 때에는 증명사진은 필요없으나, 아디스 아바바 내의 호텔 주소나 이름은 알고 있어야 별 탈 없이 만들 수 있다. 나는 주소는 몰랐지만 미리 인터넷에서 찾아본 호텔 이름을 대니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비자를 내주었다. 비자는 수기로 작성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소요되고, 그 날 외국인의 수에 따라서 줄을 오래 서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줄을 서는 동안 한 한국인 그룹이 보였다. 교수님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예가체프 커피를 연구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오셨다고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벌써부터 에티오피아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다나킬이다. 그리고 다나킬 지역은 에리트리아 국경에 위치하고 있어 개인의 여행은 허락되지 않고 여행사를 통해서만 여행이 가능하다. 다나킬 투어로 가장 유명한 여행사는 ETT(Ethiopia Travelland Tours)라는 곳이었고 이곳에 투어를 신청할 참이었다. ETT 홈페이지를 보니 고급 호텔을 50% 할인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고, 나는 Caravan Hotel을 예약하고 픽업서비스(무료)를 신청했다. 공짜라는데 마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나를 마중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일까? 비자를 발급받는데 시간이 너무 소요되어서 일까? 나는 픽업서비스만 믿고 있었던 터라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과 대략적인 택시 요금도 알아보지 않고 온 상황이었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으니 협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바가지인 줄 알면서도 10달러에 택시를 타고 Caravan Hotel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가 2달러를 더 달라고 버텼다. 아까 12달러에 합의를 봤었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다. 그냥 내릴수도 있었지만 여행 처음부터 기분을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2달러를 더 주고 말았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2달러를 더 준 것이 더 기분이 나빴다. 에티오피아의 첫인상은 택시 기사 때문에 안좋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호텔 리셉션으로 향했다. Caravan Hotel은 아디스 아바바에서 꽤나 고급 호텔에 속하기 때문에 나같은 가난뱅이 백패커에겐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장시간 비행 후 여행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고, 2015년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금 비싸지만 이곳을 예약했다. 할인 전 가격은 1박에 80달러지만 50% 할인을 받아 40달러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셉션에서 확인해보니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텔 예약을 위해 ETT와 그렇게 메일을 많이 주고 받았었는데 이럴수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오늘은 예약이 꽉 차 나는 이곳에서 묵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로 ETT 직원을 이곳 호텔로 오라고 부탁했다. 호텔 직원은 지금 조식 시간이니 ETT 직원이 올 때까지 호텔 조식을 먹고 있으라고 했다. 그것도 공짜로. 이건 welcome breakfast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한다. 택시 기사와 ETT의 업무 처리에 에티오피아에 실망부터 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호의에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역시 이래서 좋은 호텔에서 묵나보다. 조식은 뷔페식으로 내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먹어보지 못했던 퀄리티의 아침이었다. 물론 대학생일 때 했었던 유럽 여행은 좀 많이 가난하게 다니긴 했지만.


아침을 한참 먹고 있는데 ETT 직원이 호텔 식당으로 왔다. ETT 직원은 호텔 직원에게 내 아침 값으로 보이는 돈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꽤나 자연스러운 일처리에 왠지 이렇게 예약이 잘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ETT 직원의 스마트폰을 통해서 내 담당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담당자의 이름은 헬렌(Hellen)이다. 앞으로 나를 속 썩일 일이 많은 사람이니 ETT를 이용할 사람은 이름을 기억해 두도록 하자. ETT 직원은 헬렌에게 전화하여 내가 조식을 다 먹을 때 쯤 호텔로 오라고 전했다.


에티오피아에서 먹었던 조식 중 가장 좋은 조식을 더 즐겼어야 했지만, 나는 빨리 숙소를 잡고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기지 않은 채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오늘 한 달 동안의 에티오피아 여행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탈리아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에게 에티오피아 여행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아주머니는 헬렌이 1시간 후에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예언했다. 그게 에티오피아 스타일이란다. 이번 여행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아주머니도 떠난 후에야 헬렌이 도착했다. 일단 숙소가 없으니 ETT 사무실로 가서 다나킬 투어와 메켈레로 가는 비행편을 예약했다. 헬렌은 숙소 예약도 까먹고 픽업 서비스도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다나킬 투어를 100달러 할인한 500달러에 제공해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인터넷에서 다나킬 투어 가격을 알아놓고 간 덕분에 400달러까지 흥정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400달러 밑으로도 흥정이 가능한 것 같았다. 메켈레행 비행편은 50% 할인한 85달러에 예약했는데, 잔돈이 없는지 5달러를 더 거슬러 주었다.


정보: 에티오피아 항공 국내선 반값 할인

에티오피아 항공 국제선 티켓이 있는 사람은 국내선을 반값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미리 반 값으로 예매하기는 힘들고, 에티오피아에 입국해서 예매를 하거나 ETT 같은 여행사를 통해서 미리 반 값에 예매하면 된다. 경험상 여행사를 거치는 것보다 직접 에티오피아 항공 사무실에 찾아가 예매하는 것이 더욱 저렴하다.

한편, 국제선 티켓은 에티오피아에 입국이나 출국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된다. 에티오피아에 입국하는 비행편이 에티오피아 항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내선 할인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렇지 않으니 유의하도록 하자.

 

ETT 아디스 아바바 사무실 모습. ETT의 일처리는 속 터질때가 많지만 에티오피아 각 도시에 지점이 있을 정도로 큰 여행사였다. 외국인 중에는 다나킬 투어 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여행계획을 통째로 이 여행사에 맡기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아디스 아바바 여러 호텔들과 제휴하여 반값에 호텔을 소개시켜주기도 하는데, Caravan Hotel 로비에서 잠깐 둘러보니 아예 그 호텔에 상주하는 ETT 직원이 있을 정도였다.


Caravan Hotel에서 묵을 수 없게 되자 저렴한 호텔에서 지낼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동급 숙소인 Oasis Hotel Apartment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공항에서 비자를 받을 때 만났던, 그리고 ETT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에스피에라는 영국 남자도 그곳에서 묵는다며 나를 부추긴 것도 한몫했다.


Oasis Hotel Apartment. 내부 모습.


에스피에와 함께 ETT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호텔로 왔다. 에스피에는 오늘 ETT에서 시티투어를 받기로 했는데 자기 혼자라며 함께 하자고 졸랐다. 에스피에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이고 나도 혼자였던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시티투어는 민족 박물관(Ethnological museum),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엔토토 산(Entoto mountain), 재래시장(Merkato) 등 아디스 아바바의 주요 장소를 하루만에 다 둘러볼 수 있고, 각종 입장료를 포함하여 25달러이므로 그다지 비싼 투어는 아니다. 또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추가하고 관심이 없는 곳은 빼도 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은 택시를 하루 대절해서 아디스 아바바를 둘러보느니 ETT의 시티투어를 신청하는게 더욱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국립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Ethiopia 이었다. 국립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역시 인류의 조상 루시 Lucy 의 화석이다. 루시는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의 화석 중에 가장 오래된 318만 년 전 것이다. 그것도 뼈 한 두 조각이 아닌 전체 골격의 40%나 발굴되어 학문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정식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 이지만, 발굴 당시 캠프에서 흘러나온 비틀즈 곡명을 따서 루시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루시가 고인류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높은 보존성과 오래된 시기뿐만 아니라 침팬치와 인류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루시는 침팬치와 사람의 중간 정도의 골격을 가지고 있다. 루시를 보면서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근거가 나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됐다.



국립 박물관의 외관. 굉장히 아담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정원에는 나이 많은 거북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오래 산 것은 분명해 보였다.


루시의 유골. 루시의 유골은 굉장히 작았다. 1m가 조금 넘는 것 같았다. 최근 루시는 여자이고,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은 것 같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고작 이 정도의 단서가지고 그런 사실을 유추해내는 연구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나는 루시를 보면서 '루시가 키가 작으니, 키가 크지 않은 나는 진화가 덜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출현한 인류가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인류가 자기 나라에서부터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꽤나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이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는 가이드는 딱히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국립 박물관에 가장 명물은 루시이지만, 볼만한 것이 루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 박물관에는 각종 유물들과 그림, 옷 등이 전시되어 있어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구경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새해가 되면 메스켈 광장 Meskel square 에서 열리는 축제를 묘사한 그림이다. 오늘이 12월 31일이기 때문에 오늘 밤에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잠시동안 기대했지만 가이드에 의하면 에티오피아력으로 1월 1일에 행해지는 축제라고 한다. 오늘은 에티오피아력으로 4월이기 때문에 아무런 행사도 없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력과 시간

에티오피아 정교에서는 예수 탄생 시점을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만의 달력을 사용한다. 에티오피아력은 13월로 구성되어 있으며 1~12월은 각각 30일씩, 마지막 13월은 5일로 구성되어 있고, 그레고리력(우리가 사용하는 달력)보다 약 7년 8개월 정도 늦다. 따라서 2015년 12월 31일인 오늘은 에티오피아력으로 2008년 4월 22일이다. 또한 에티오피아는 그들만의 시간을 사용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시각으로 오전 6시가 그들 시간으로 0시이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달력이 다른 것은 별 상관이 없었지만 시간이 다른 것은 때때로 오해를 불러오곤 했다. 사람에 따라서 그리니치 시간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에티오피아 시간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같은 사람이라도 두 시간을 혼용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따라서 에티오피아 여행 중에는 시간을 말할 때 반드시 국제 시간으로 그 시간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한다.


국립 박물관 다음으로는 아디스 아바바 대학 내에 위치한 민족 박물관 Ethnological museum 으로 향했다. 에티오피아에는 약 90여개의 민족들이 살고 있는데 민족 박물관에서는 이들의 생활 방식을 민족 별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에티오피아를 오랫동안 여행할 여행객이라면 여행 초반에 민족 박물관을 먼저 방문해서 각 민족에 대한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여행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나도 우연히 에스피에를 따라 시티 투어를 받는 바람에 여행 첫 날 민족 박물관을 둘러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여행 초반에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민족 박물관의 입장료는 100비르이고, 기부금을 내면 대학원생들이 투어를 해준다고 한다.
민족 박물관 내를 구경하던 도중 우리는 독일 여행객 스테판을 만나게 되었다. 스테판도 혼자 여행 중이어서 이때부터 같이 다니기로 하였다.



다음으로는 아디스 아바바에서 가장 높은 곳인 엔토토 산 Entoto Mountain 으로 향했다. 엔토토 산은 아디스 아바바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어 아마 씨티 투어를 하지 않았다면 가보지 못했을 장소였던 것 같다. 엔토토 산에서는 아디스 아바바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지만 공해가 심하기 때문에 아디스 아바바를 그다지 선명하게 관찰할 수는 없었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다보면 자동차에서 정말 새까만 연기가 나오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아마도 아직 환경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서인듯 한데 이 때문인지 높은 곳에서 에티오피아의 전경을 내려다 볼 때면 항상 검은 색 띠가 하늘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엔토토 산 정상이 아닌 산 중턱에서 멈추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곳이 아디스 아바바 시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름 전망 보이는 곳에 올랐으니 기념 사진을 찍기로 했다. 좌측부터 에스피에, 스테판, 운전사, 나, 그리고 뒤에 위치한 나무를 짊어진 아주머니.




엔토토 산에 올라가는 길에는 이렇게 나무를 짊어진 '척하는' 아주머니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아주머니들이 진짜로 나무를 메고 산을 내려가는 모습은 볼 수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이 아주머니들이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하게 되었다.


엔토토 산을 내려와 에티오피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넓은 야외 시장이라는 메르카토 Mercato 를 구경했다. 메르카토는 정말 넓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수식어는 과장이 아닌 듯 했다. 구글맵에서 메르카토를 보면서 '설마 이게 다 시장이겠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게 다 시장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시장을 누빈 덖에 짧은 시간 동안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만약 걸어서 메르카토를 구경한다면 최소한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메르카토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부터 식료품과 생활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복잡한 곳이기 때문에 소지품 관리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에티오피아는 급격히 발전 중인 나라로 아직은 시민의식이 부족한 것 같았다. 메르카토 내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고, 상점 앞에 쌓인 물건들은 쓰레기를 쌓아둔 것인지 상품을 쌓아논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비록 시장이 더러울진 몰라도 바쁘게 생활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모습은 순박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 손바다을 흔드는 아저씨도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시티 투어로 럭셔리한 여행을 한 김에 저녁까지 비싼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까지만 펑펑 쓰고 내일부터 아껴쓰면 되지 않을까..?


2000 Habecha Cultural Restaurant라는 아디스 아바바에서 꽤 유명한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식점 입구에서는 커피 세레모니를 보여주며 에티오피아 커피를 맛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에스피에와 스테판, 그리고 에티오피아인 여자 가이드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허니 와인이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 전통술인 테치 Tej 와 아락키를 주문했다. 아락키는 보드카와 비슷한 맛이었으나, 테치는 나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나는 단맛이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테치는 예외였다. 여행 첫 날 테치를 맛보게 된 이후 나는 한 달의 에티오피아 여행 내내 테치를 맛 볼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주저없이 마시곤 했다.

 


이 레스토랑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에티오피아 전통 음악과 춤을 볼 수 있기 때문. 우리가 테치의 첫 잔을 비우기도 전에 무대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산을 들고 춤을 추는 등 완전히 전통적인 춤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앞자리에 앉은 덕에 댄서들이랑 같이 춤을 출 기회가 있었는데 스테판은 오늘 하루동안 지켜본 모습 중 가장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었다.

 

에티오피아 음식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제라 Injera 이다. 인제라는 테프 teff 라는 곡물로 만드는데, 테프는 고산지대에서 자라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고산지대로 이루어진 에티오피아의 주식이 된 것이다. 인제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밥 같은 음식으로 인제라를 기본으로 그 위에 닭고기, 야채 등을 같이 먹는다. 심지어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볶음밥을 시켜도 인제라 위에 볶음밥을 올려주기도 했다. 인제라는 반죽 후 3일 정도 발효시킨 다음 굽기 때문에 약간 시큼한 맛이 난다. 가이드는 인제라는 오른손으로만 먹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의외로 오른손만으로 인제라를 찢고, 고기나 야채를 집어서, 한 입에 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부페로 주문했지만 한 접시만 먹고는 더이상 먹지 않았다. 만약 여행 첫 날만 아니었다면 이 비싼 식당에서 부페를 시켜놓고 한 접시만 먹는 미친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배가 덜 고팠던 여행 첫 날의 백패커는 그런 사치를 부리고 말았다.

 

오늘 맛 본 맥주들. 세 개 중에선 왈리아 Walia 가 가장 괜찮았다.

 

오늘은 2015년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좀 무리해서 더 놀기로 했다. 2차는 Mama's kitchen이라는 클럽이었다. 아까 식당의 손님은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면, 이곳은 좀 논다고 하는 젊은 에티오피아 청년들을 볼 수 있었다. 가수 3명이 돌아가면서 라이브 공연을 했는데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유행하는 노래들을 이날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한 달 동안 에티오피아 여행을 하면서 똑같은 곡을 수도 없이 듣게 되었다.

오늘은 에티오피아력으로 4월이지만 현대적인 클럽 답게 뉴 이어 카운트다운도 해주었다. 무려 카운트다운은 5분이 빗나가 11시 55분에 '해피 뉴이어!'를 외쳤지만, 이 덕분에 한 해를 보내고 병신년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에스피에와 나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를 탈 때 분명 200비르로 합의를 했었는데 내릴 때 택시 기사가 300비르로 협상했었다며 말을 바꿨다. 아침에 내가 공항에서 카라반 호텔까지 타고 갔던 택시와 동일한 수법이다. 하지만 에스피에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것처럼 보였다. 택시 기사가 에스피에의 몸을 밀치는데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따졌고, 결국 200비르를 던져주고 우린 호텔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씼지도 않은 채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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