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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어제 빤 빨래가 벌써 다 말라있었다. 날씨가 건조하네. 빨래하기 좋은 동네다!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다나킬 투어에서 걸레가 된 청바지 빨았다.

 

아침은 숙소 건너편에 있는 Sabean International Hotel에서 firfir라는 음식에 도전했다.

firfir가 나왔다! 뭔가 푸짐하게 생겼다. 인제라에 덮여있는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 설마 인제라는 아니겠지란 마음으로 맛을 보았다. 인제라다.-_- 인제라를 인제라로 덮냐……… 이건 마치 볶음밥을 흰밥으로 덮은거나 마찬가지잖아! 물론 안에가 다 인제라는 아니다. 약간의 고기와 야채가 들어있었다. Firfir는 이런 음식이었다. 결국 나는 겉의 인제라는 남겼다.

 

오늘은 자전거로 악숨 근교를 여기저기 탐방할 예정이다. 악숨은 유적지가 시내뿐만 아니라 근교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바자지(툭툭이)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주변 유적지까지 다 볼 수 있다. 나는 수많은 바자지 기사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자전거를 빌려 악숨 시내를 달렸다. 그런데 악숨에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얼굴이 조금 하얀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 다들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가 악숨을 구경하러 왔는데, 악숨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는 기분이다. 

어제 봤던 돌기둥 유적지를 조금 지나니 쉬바 여왕의 욕조(Queen of Sheba's Bath)가 나왔다. 음… 욕조치고는 매우 컸다. 혹시 쉬바 여왕이 좀 뚱뚱했나? 물은 1,500년 전에는 이런 색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욕조를 지나 칼렙의 묘(Tombs of Kings Kaleb)로 향했다. 칼렙의 묘로 가는 길은 오로지 언덕길이었다. 그것도 비포장 언덕길.. 그리고 귀찮은 두 명의 꼬마 아이가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자전거 기어를 최대한 낮추고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내 저질 체력을 인정하고 자전거에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로 했다. 차라리 자전거를 안빌렸으면 더 수월하게 올라갔을텐데, 짐을 하나 더 얹고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간간히 관광객을 태운 바자지들이 내 옆을 쓩 지나 올라갔다. 사람들이 왜 자전거를 안빌리는지 몸소 체험했다. 출발할 때 샀던 물 1L를 다마시고서야 언덕 정상에 있는 칼렙의 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칼렙의 묘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돌기둥 유적지 입장권을 제시해야 했다.(버리면 안돼요) 칼렙의 묘는 그냥 묘였다... 내 배경지식이 짧아서인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없었다. 비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붕이 태양으로부터 나도 보호해 주었다. 만약 저 지붕이 없었다면 나는 사진 속의 관 안에 들어가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높은 곳에 올라오니 보이는 풍경은 좋았다. 이런 맛에 힘들긴 하지만 높은 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나의 힘들었던 여정은 내려오는 길에서 보상받았다. 비포장도로를 자전거로 내려오는 건 하나의 액티비티였다. 비포장도로여서 바퀴의 충격이 손에 모두 전달되었는데(충격완화장치가 없는 자전거여서 더욱 심했다^^) 굉장히 짜릿했다.

 

짜릿한 다운힐을 마치고 어제 보았던 돌기둥들을 또 방문했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부모님 뻘 되는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이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주된 목적)드렸다.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우리는 내일 이집트로 넘어간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사라지셨다. 아쉬운 한국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15분 정도를 아무도 없는 도로를 따라 달렸다. 중간중간에 아시아인이 자전거 타는걸 처음 보는지 사람들 반응이 부담스러웠다. 아시아 사람도 자전거 탈 줄 아는데..

 

구딧 지역(Gudit Stelae Filed)에 도착했다. 별 기대는 안하고 왔지만 그보다도 기대 이하였다. 너무 보존 상태가 안좋아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보아도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가이드를 대동하고 왔으면 재밌는 설명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혼자 와서 조금 둘러보다가 그냥 건너편에 있는 쉬바 여왕의 궁전(Queen of Sheba's Palace)을 둘러보기로 했다.

 

쉬바 여왕의 궁전은 구딧 지역의 바로 건너편에 있다. 방금 폐허에 가까운 구딧 지역을 보고 온 터라 쉬바 여왕의 궁전은 정말 궁전처럼 느껴졌다! 6세기에 만들어진 것치고는 상태가 너무 좋아 아마 몇 년 전에 복구한 걸로 생각되어지지만, 화장실, 주방 등의 흔적이 남아있어 상상을 하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원래는 쉬바 여왕의 궁전으로부터 2.5km 떨어진 고베드라의 암사자(Lioness of Gobedra)까지 볼 계획이었으나, 쉬바 여왕의 궁전과 구딧 지역을 보고 난 후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숙소로 돌아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숙소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 악숨 시내를 내려다보기로 했다. 악숨에 도착했을 때부터 저 산에 오르면 악숨 시내가 잘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늘이 목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라리아 예방약을 빈 속에 복용했다. 아직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진입하지 않았지만.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들어가기 2주 전부터 예방약을 복용하라는 국립중앙의료원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나는 매 주 목요일마다 말라리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 약국에서 약을 살 때 약사 선생님이 이 약은 진짜 독하기 때문에 빈 속에 먹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지만, 역시나 미련한 나는 오늘 그 약을 빈 속에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뭔가 몸에 이상징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없이 축 처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고 숙소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지만, 오늘이 악숨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쉬었더니 이미 해가 져버렸다. 악숨시내를 보기는커녕 내려오는 길도 잘 안보였다. 괜히 헛고생만 했다.

정보: 약은 복용법을 꼭 지켜서 드세요.

 

숙소에 돌아오니 1층에서 어떤 젊은 남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내일 곤다르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내일 하루 만에 곤다르로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나는 이미 악숨에서 곤다르로 가는데에는 쉬레라는 마을에서 하루 자야 해서 1박 2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솔깃했고, 결국 내일 새벽에 쉬레까지 개인 차량을 타고 가기로 하고 625비르를 주었다.

내 머리 속의 가격 산정 근거는

  1. 악숨 -> 쉬레 교통비 (25비르)
  2. 쉬레 하루 숙박비 (100비르)
  3. 내 여행이 하루 절약됨의 가치 (500비르)

였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게 나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돈의 일부를 지불했기 때문에 무를 수 없어 속이 좀 쓰렸다.

 

속은 쓰리지만 오늘은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다! 이미 늦은 오후부터 젊은 남자애들은 옷을 갈아입고 들뜬 마음으로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밤 늦게까지 놀 수는 없지만, 길거리에라도 나가 사람들 구경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말라리아 약 부작용 때문에 저녁을 좀 먹어야 하기도 했다.

 

밤이 되어 길거리에 나오니 남녀 할 것 없이 다들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와있었다. 에티오피아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은 많이 들었고 실제로 1주일 동안 여행하면서 그 사실을 느꼈던 바이지만, 오늘 최고로 치장한 에티오피아 여자들을 보니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남자들이 부러웠다.

 

클럽은 너무 시끄럽고,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에티오피아 가요만 크게 틀어놓아서 그냥 조금 큰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인제라는 많이 먹었기 때문에 미트소스가 더해진 밥을 시켰다. 그랬더니 이렇게 나왔다….. 밥을 시켜도 인제라 위에 나오는구나… 이제 좀 에티오피안 스타일의 음식을 알 것만 같다.

 

대가족이 자리가 없어 내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가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 결혼 여부를 묻길래, 아직 좋은 여자를 못 만나서 못(안x) 했다고 답했다. 그럼 에티오피아 여자는 어떠냐고 하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하니 다들 빵 터졌다. 조금은 생각하는 척을 할 껄 그랬나보다.

 

이렇게 에티오피안 크리스마스와 악숨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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