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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모기 때문에 한숨도 못잤다. 오늘은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아마도 그곳을 통해서 모기가 끊임없이 유입된 것 같다. 밤새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사투를 벌였지만 세 방이나 물려 밤새 저항한 의미가 없었다. 다음부터는 어딜 가든 화장실 문 만은 꼭 닫고 자기로 다짐했다.ㅠㅠ

 

비싼 돈을 주고 예약한 차는 에티오피안스럽지 않게 정확히 4시 반에 숙소 앞에 왔다. 아마도 잔금을 쉬레에 잘 도착하면 준다고 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 봉고차를 타고 쉬레(Shire)라는 마을로 가서 곤다르로 향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나는 밤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에티오피아에는 왜 야간에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도로에는 조명이 하나도 없고, 대부분 산길이기 때문에 커브길이 많아 사고 위험이 높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함정 같은 큰 구덩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갑자기 도로에 어떤 동물이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밤에는 운전할 수가 없다. 나는 이걸 악숨에서 쉬레로 가는 단 한 시간만에 모두 겪었다. 굉장히 위험한 질주 끝에 쉬레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비행기, 여행사 차량으로만 이동해봐서 로컬 버스정류장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버스 정류장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버스 정류장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왜 여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버스정류장 문이 닫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6시가 되어야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가이드북에는 쉬레에서 곤다르(Gondar)까지 버스로 11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무얼 좀 먹어두기 위해 정류장 옆 로컬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무엇을 시켜야 할지 잘 몰라 그냥 착해보이는 아저씨가 먹고 있는 것과 똑 같은 것을 달라는 주문 법으로 스크램블 에그, 빵, 짜이(짜이는 내가 추가로 시켰다)를 시켰다. 24비르.

 

드디어 6시가 되고 버스 정류장 문이 열리자 갑자기 사람들이 우루루 버스 정류장 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가 확실히 후진국임을 느낄 때가 바로 줄을 설 때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줄 같은게 없다. 누가 서있어도 그냥 밀치면서 앞으로 나가면 그 사람이 우선 순위다. 버스 정류장 문이 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들어가면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다들 먼저 들어가려고 난리다. 왠지 나도 늦게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서 무거운 배낭으로 밀치면서 정류장 안으로 들어갔다. 쉬레!쉬레!를 외치는 버스에 탑승하니 어떤 외국인(폴란드 남자) 한 명만 앉아있고, 내가 두 번째 승객이다. 내가 너무 밀치면서 들어왔나…;; 아무튼 버스에 탑승하니 한 직원이 내 배낭을 버스 위에 싣게 달라고 한다. 그 직원이 버스 위에 짐을 올리는 동안 나는 차장(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버스표를 사고(127비르) 폴란드 남자 옆에 앉으라는 말을 듣고 그곳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버스에 그 좁은 좌석에 둘이 딱 붙어 앉았다. 한참을 앉아있고 나서야 알고보니 버스표에 좌석 번호가 적혀 있는데 차장이 우릴 놀리려고 그랬는지 외국인 두 명을 딱 붙여 앉혀놨던 것이었다. 그렇게 둘이 붙어 앉아 있는데 아까 짐꾼이 나에게로 오더니 짐을 올린 값으로 100비르를 달란다. 미친놈.. 11시간 동안 가는 버스가 127비르인데 고작 그거 올렸다고 100비르냐.. 사기를 쳐도 좀 정도껏 치지.. 게다가 나는 이미 짐 싣는 값은 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더욱 줄 수 없었다. '내가 왜 줘야되는데? 이거 버스비에 포함된 거 아냐?' '난 그럼 공짜로 일하냐? 어서 내놔.'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내가 일어나서 그럼 배낭 다시 내리라고, 내가 올리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웃으면서 장난이었다고 노프라블럼이라며 앉으란다.

그렇게 앉아서 버스에 사람이 차기를 기다리는데 아까 그 짐꾼이 또 와서 그럼 20비르만 내란다. 하… 한창을 또 말싸움을 하다가 내가 다시 일어나니 그제서야 노프라블럼. 5분 뒤에 또 와서 왜 돈 안주냐고…-_- 이번엔 진짜 안되겠다 싶어서 힘으로 그 짐꾼을 밀치면서 아 내 가방 내놓으라고 하니 또 아 진짜 괜찮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버스 짐꾼이 짜증난다는 글을 읽었었는데, 아 이게 그거구나 싶었다. 짐꾼놈이 진짜 엄청 짜증나게 깝쭉댔다. 또 나를 더욱 짜증나게 했던건 건장한 폴란드 남자한테는 안그러고 나한테만 그런다는 사실이다. 폴란드 남자는 키가 190이 넘어보이는 거구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반응을 보이니 재미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 앞으로는 반응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짐꾼이랑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어느새 버스에 사람이 꽉 찼고 드디어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표의 모습. 에티오피아력으로 날짜가 적혀있다. 오늘은 2008년 4월 29일이란다. 뭐 왠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아 좋긴한데, 2008년은 싫다. 이 때는 내가 군대에서 구르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_-; 1303은 버스 번호로 버스에 크게 번호가 적혀있으니, 점심시간 등 버스에서 내렸는데 어느 버스였는지 헛갈릴 때는 버스표를 보면 된다. 24는 내 좌석 번호이다. 맨 마지막에 가격이 적혀있다. 127비르. 버스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차장이 다시 걷어가니 중간에 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버스 내부 모습. 의자는 90도로 딱딱하게 고정되어 있으며, 충격완화장치 같은 건 전혀 없기 때문에 바퀴가 받는 미세한 진동까지 엉덩이로 100% 전해진다. 혹시 등산용 돗자리가 있는 사람은 버스 탈 때 챙기면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굳이 버스를 타기 위해 등산용 돗자리를 가져올 필요는 없다.. 좌석 뒤에는 마치 피로 쓴 것처럼 빨간 글씨로 좌석 번호가 적혀있다. 왠지 내 티켓에 적힌 자리에 앉지 않으면 내 피로 좌석 번호를 다시 적을 것 같이 으스스하지만, 사실 승객이 어느 좌석에 앉는지 차장은 관심이 없었다. 나도 세 자리 중 가운데 자리를 배정받았지만 창가자리에 앉아서 곤다르까지 갔다.

 

버스가 드디어 출발해서 쉬레 버스 정류장을 떠난다. 어두울 때 탑승했는데 사람이 꽉 찰 때까지 기다리다보니(=짐꾼이랑 옥신각신 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아침 9시에 인다 아바 구나라는 마을에서 잠시 정차하면서 점심먹을 시간을 줬다. 배꼽시계 기준으로는 아침인데, 현지인들이 나에게 lunch time이라고 설명해서 나도 점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 뭐 새벽에 쉬레 버스 정류장 앞에서 아침을 먹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점심이 맞기도 하지만.. 아무튼 점심시간은 20분 주어진다. 한국에 돌아가면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어도 짧다고 불평하지 않을 생각이다.

버스 번호 1303이 눈에 띈다. 보이는 것처럼 내가 탄 차는 2nd level이다.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차가 어떤 차는 1st level이고, 어떤 차는 2nd level이었다. 다음 번에는 1st level을 타서 차이점을 파악해 봐야겠다.

 

나는 아침을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이 별로 땡기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에서 콜라를 발견하자 갑자기 콜라가 먹고 싶어 가격을 물어봤다. 20비르란다. 보통 15비르인데 여기가 버스정류장 근처여서 비싼건가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아저씨께서 가게 아주머니한테 막 뭐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나한테 저 콜라는 15비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아저씨는 내 뒷좌석에 앉아계신 분이었다. 어떻게든 외국인을 속여 돈 몇 푼 더 벌어보려는 사람들과 그런 외국인을 보호해주려는 사람들 속에서 내 에티오피아 여행은 진행되고 있다.

 

쉬레에서 곤다르로 가는 길은 평지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로지 꼬불꼬불 산길이다. 차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미리 준비해둔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가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승객이나 다급한 손길로 신호를 보내는 승객에게 비닐봉지를 나누어준다. 버스 직원들이 미리 비닐봉지까지 준비해둔걸 보면 이 구간은 항상 차 멀미를 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차 멀미를 심하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오늘 이 길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차 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멀미약을 미리 준비하거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버스에 탄 승객 중 절반 이상이 비닐봉지에 점심 먹은 것을 다시 꺼내보는 가운데 결국 한 아주머니가 사고를 치셨다. 비닐봉지를 받기 전에 바닥에 토를 한 것이다. 차에는 냄새가 진동하고, 그 냄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더 토하는 것 같고, 애기들은 울기 시작하고, 닭까지 울기 시작했다…(버스에 닭이 타고 있었다-_-) 아비규환인 상황. 한편 그 짐꾼은 바닥에 토한 아주머니의 스카프를 잡아당기며 심하게 뭐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속이 좋지 않아 가만히 웅크려 계셨고.. 그러자 승객들이 그 짐꾼한테 '왜 그런식으로 버릇없이 말하냐'는 뉘앙스로 다그쳤다. 하지만 그 짐꾼은 오히려 다그치는 승객들을 향해 욕으로 보이는 말을 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에티오피아 버스의 짐꾼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저 짐꾼만 이상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침에 저 짐꾼과 옥신각신하며 에티오피아에 안좋은 감정이 쌓였던 것이 조금 풀렸다.

 

버스가 잠시 평지를 달리나 싶었더니 시미엔 산 근처에 오자 다시 꼬불꼬불 산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산을 한참을 오르는데 갑자기 엄청난 풍경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버스표에 좌석번호가 적혀 있지만 내 마음대로 창가 자리로 옮겼었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보는 경치를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할 시미엔 산(Mt. Simien) 트레킹이 더욱 기대됐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보니 어느새 더바르크(Debark)에 도착했다. 시미엔 산 트레킹을 할 사람들은 곤다르보다 시미엔 산이 더 가까운 더바르크에서 트레킹을 준비하기도 한단다. 폴란드 남자는 트레킹을 위해 이곳에서 내렸고, 나는 계획대로 버스를 계속 타고 곤다르로 향했다. 그런데 더바르크에서 탑승한 한 승객과 아까 그 짐꾼이 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뜯어말리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 짐꾼은 더바르크까지 오는 동안 나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으나(나는 반응하지 않음), 이 승객과 싸운 이후에는 뭔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도 건들지 않았다.-_-; 뭐 덕분에 마지막 몇 시간만이라도 조금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버스는 예상보다 3시간이나 빠른 오후 2시에 도착했다. 한두시간도 아니고 3시간이나 일찍오다니.. 뭐 아무튼 일찍와서 좋긴하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아까 콜라 가격을 알려줬던 아저씨가 숙소 잘 찾아갈 수 있냐며 굉장히 걱정을 해주셨다.ㅠㅠ 저 잘 찾아갈 수 있어요!라고 장담을 했지만 처음엔 저렴한 숙소가 모여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엄한 곳에서 한참을 헤맸다. 결국 크라운 펜션(Crown Pension)의 공용화장실 싱글룸을 1박에 140비르에 묵기로 했다. 옆에 위치한 퀸 타이투 호텔이 시설이 더 좋았으나, 10비르를 안깎아줘서 크라운 펜션에서 묵게 되었다. 공용화장실은 두 방이 같이 사용하는데, 나머지 한 방이 오늘 비어있어 결국 내 개인 화장실이나 다름 없었다. 에티오피아에 와서 처음으로 발품을 팔아서 구한 숙소여서 그런지 방에서 와이파이도 되고(물론 느리지만) 꽤 만족스럽다. 혹시 저렴한 숙소를 찾는 사람들은 벨레게즈 펜션(Belegez Pension) 쪽에 저렴한 숙소들이 모여있으니 그쪽에서 찾으면 된다. 참고로 벨레게즈 펜션은 2016년 1월 현재 리모델링을 하는지 문을 닫고 공사 중인 상태였다.

 

곤다르 시내와 곤다르 성을 바깥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 Alliance Inn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스테이크를 주문했니 nothing이라고 해서, 밥을 주문했더니 또 nothing이란다. 그럼 뭐가 nothing이 아닌데?라고 물으니 스파게티는 된단다. 그래서 별로 땡기지는 않았지만 미트 소스 스파게티를 시켰다.

 

이제 에티오피아 맥주는 거진 다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메뉴에 스페셜 비어가 눈에 띄었다. 뭐지? 가격은 별로 스페셜하지 않아(17비르) 한 번 시켜봤더니, 지금까지 먹어봤던 에티오피아 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다! 베델레(Bedele)! 앞으로 너만 마셔야겠어! Export라고 적혀있는 걸로 봐서 수출용으로 만든 맥주인가 본데, 그래서 더 신경써서 만들었나보다. 신경 안써서 만든 것도 맛있는데! 맥주를 마실 때 마다 에티오피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ㅠㅠ

 

이렇게 악숨에서 곤다르까지 무사히 이동을 했고, 베델레 두 병으로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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