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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까지 일어나도 되지만 7시에 일어났다. 더 이상은 못 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시, 알렉스, 이스라엘 남자 두 명의 코고는 소리에) 중간중간 자주 깨긴 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10시간 이상은 잔 것 같다. 어제 노숙의 피로는 훌훌 털어버 듯 몸이 가뿐했다.

 

숙소에서 아침과 커피를 마시고 에트라 에일(Erta ale) 화산으로 향한다. 다나킬 투어 동안 주류를 제외한 모든 음료는 무료이기 때문에 당연히 저 커피도 공짜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두 잔이나 마셨다. 하지만 이후 차에서 쿨쿨 잠이 들었다. 오늘은 아침에 출발하여 밤 늦게까지 화산을 향해 하루종일 이동하는 날이다. 그만큼 화산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보러 갈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쉬켓에 있는 아이들 역시 순수해서 사진을 찍어주면 매우 좋아한다. 원 펜, 원 볼(축구공), 페트병을 달라고 조르지만 전혀 귀찮지 않다. 나에게도 저렇게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정화되었다.

 

에트라 에일 화산으로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뷰 포인트에서 멈추고 사진 찍을 시간을 준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안좋아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오늘 화산은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운전하기 위험한 짙은 안개가 더 걱정스러웠다.

 

11시 30분쯤 어떤 마을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했다. 한 이스라엘 할머니가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No Photo!'를 외친다. 이스라엘 할머니는 그 아이를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을 전체를 찍고 있었을 뿐이었다. 메켈레에서 이렇게 공격적인 사람을 처음 본 우리는 가이드에게 이곳은 왜 사진을 찍으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왠지 그 아이는 매일마다 몰려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짜증이 나서 심술을 부렸던 것 같다. 이해가 안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졸다 보니) 어느새 날이 개었다. 아마 산 위에만 안개가 짙게 끼었던 것 같다. 또다시 지루하게 달리다보니 사막지형에 진입했다. 사막에 들어서자 갑자기 온도가 치솟아 엄청 더웠다. 알렉스의 암내도 더욱 심해졌지만, 더운 것보단 낫기 때문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키기로 했다. 사막을 달리는 것은 일반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과는 또 달랐다. 마치 다카르 랠리에 참여한 것 같았다. 사막지형을 달리는 것은 무척 힘들었지만, 또 하나의 액티비티를 즐기고 있다는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즐겼다.

 

고된 사막지형을 한 시간 정도 달린 끝에 점심 먹을 장소에 도착했다. 점심 먹을 장소는 사막지형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점심은 한 오두막 같은 곳에 들어가 먹는데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움직일 때 마다 모래가 많이 날렸다. 한 영국인이 계속 발을 털자 한 미국인이 발 좀 움직이지 말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점심은 쌀밥이 나오기 때문에 한국인과 잘 맞는 것 같다. 오늘은 화산을 보고나서 저녁을 먹을 것이라고 어제 밤에 가이드가 말해줬기 때문에 점심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흔들리는 차량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은근히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점심을 먹는 도중에 오늘부터 합류한 미국인 여자 산드라가 나와 요시에게 말을 걸었다. (2일짜리 화산만 보는 투어를 받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합류한다) 요시가 영어를 '너무' 못해서 나에게 질문이 쏟아지는데,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몰랐다. 산드라만 아니었으면 밥을 세 그릇 먹었겠지만, 두 그릇만 먹고 일어섰다. 요시와 같이 다니면 영어는 많이 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내 역사상 가장 험하고 위험한 오프로드를 달렸다. 아니, 달렸다는 표현보다는 겨우 기어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점심 이후의 지형은 화강암 지대였는데 땅이 무척 딱딱하고 울퉁불퉁해 4WD인 우리 차량도 겨우겨우 기어갈 수 있었다. 몇몇 지형은 차가 옆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고, 몇몇 지형은 차가 힘이 달려서 몇 번이고 시도를 해야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 차가 너무 흔들려 차 문과 천장에 머리를 몇 번씩이나 박았다. 쿨한 로씨아 형님은 내가 머리를 박을 때 마다 그저 허허허 웃기만 했다. 날씨만 덥지 않으면 걸어서 가는게 더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밖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웠다. 오늘은 어찌어찌 지나갔지만 내일 이 길을 되돌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두 시간 정도 화강암 지대와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베이스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오, 오늘은 여기서 자는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란다.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 후 화산을 향해 3시간 정도 걸어가서 그 곳에서 잘거라고 한다. 으.. 나는 이미 벌써 체력이 바닥났는데, 3시간이나 걸어야 한다니! 나는 여기서 매트릭스를 깔고 누워서 좀 쉬기도 하고,

 

왠지 저 멀리 엄마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낙타찡을 모델로 감성 사진도 찍어보기도 하고,

 

해가 떨어지는 모습도 보며 감상에 빠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해가 진 후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스프를 먹고 에트라 에일로 출발했다. 오오, 드디어 화산을 보러 가는건가!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매트릭스는 낙타가 옮겨주지만 침낭과 패딩과 같은 개인 방한 장비는 자기가 챙겨서 가야한다. 3시간 동안. 나는 날씨가 별로 추울 것 같지 않았고, 러시아 커플들도 침낭을 챙기지 않길래 나도 호기롭게 패딩만 들고 출발했다. (개인적인 침낭이 없더라도 여기서 나누어주는 침낭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나와 러시아 커플 둘, 총 세 명 밖에 침낭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3시간의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에트라 에일은 해발 613m로 경사가 매우 완만했고, 우리 그룹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침낭을 챙기지 않아 가볍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이 컸다. 여행사에서 나눠 준 큰 침낭을 메고 낑낑 거리며 오르는 요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침낭을 안챙겨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엔 화산을 배경으로 별 사진을 찍었다.

 

3시간의 지루한 걸음 끝에 드디어 오늘 우리가 잘 캠핑장에 도착했다. 그 때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무슨일이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봤다.

저 멀리에 화산이 불을 뿜고 있었다. 내 생에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직접 본 화산이다.

 

불에 타죽고 있는 사람들. 이미 다른 여행사에서 먼저 와서 화산을 구경하고 있었다. 화산 근처는 유독가스가 심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한다. 우리는 먼저 온 여행사의 사람들이 되돌아 올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화산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대박이다. 말도 안된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뜨겁고, 더 힘이 넘쳤다. 지구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을 보고 있음에도 그 힘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저 끓고 있는 화산이 이 정도인데, 폭발하는 화산은 얼마나 힘이 센건지 감도 안왔다. 얼마나 뜨거우면 이 딱딱한 암석이 액체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인가.. 처음에는 셔터를 쉴 세 없이 눌러대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넋 놓고 화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었다. 내 눈에 더 담고 싶었지만, 내일 아침에 또 보러 올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캠핑장에 돌아오니 가이드와 요리사들이 저녁을 해 놓았다. 저녁은 스파게티와 빵. 보기에는 별로 맛이 없어보이지만, 캠핑장에서 먹는 건 어떤 것이든 맛있다. 나만 그런가..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갔다. 내일은 화산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화산 근처는 무척 뜨거워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이불 삼아 매트릭스에 누웠더니 별이 쏟아졌다. 피곤하지만 별을 보느라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안경을 벗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과감히 안경을 벗고 잠을 청했다. 바람은 조금씩 쌀쌀해졌만 패딩과 외투를 입었더니 침낭은 필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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