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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20분에 눈을 떴다. 4시에 일어나도 되는데 혹 늦잠 자서 비행기를 놓칠까봐 압박을 받았나보다. 호텔에서 공항으로 차를 태워줬다.

 

하지만 국제선 터미널로 데려다 줘서 국내선 터미널까지 10분을 걸어야 했다. 짐은 17.4kg. 다음 비행기를 탈 때에는 무게가 많이 줄었으면 좋겠다. 이 짐을 메고 숙소를 찾아다닐 자신이 없다.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소녀가 울자 아빠가 싸이의 DADDY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아직 나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뮤직비디오를.. 에티오피아에까지 진출한 월드스타 싸이님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침 시간에 타서 그런지 에티오피아 항공에서는 정체불명의 샌드위치를 줬다. 이 샌드위치가 호텔 뷔페 조식이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먹으면 먹을수록 헬렌한테 화가 났다.

 

메켈레 공항에 도착했다. 나름 국제 공항이다!

 

비행기는 30분 연착됐지만 무사히 메켈레에 도착했다. ETT에서 픽업해주기로 하여 공항 앞 주차장에서 기다린다. 이번에도 안오는게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올 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ETT의 픽업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안오는 일은 없겠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픽업차량을 타고 ETT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 일본인이 나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한다.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다가 우리는 투어를 받을 때 함께 하기로 했다. 잠시 후 ETT 사무실에 가이드가 와서 투어에 대한 설명을 한다. 빨리 숙소에 가서 씼고 좀 자고 싶은데, 내일 설명해도 되는걸 왜 지금 설명하는 걸까?

 

투어 동안 차를 같이 탈 사람들을 정한다. 다 배정했더니 한 명이 남는다. 여행사 직원이 당황한 눈치다. 다시 팀원을 배정했더니 다행히 영어가 서툰 러시아 커플(알렉스와 소피아)과 일본인 요시와 함께 하게 되었다. 영어 수준이 비슷해서 투어를 받는 내내 즐거웠다. 이 구성원이면 어딜가도 재밌었을 것 같다.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 같다.

 

차에 탔다. 숙소에 데려다 주나보다. 근데 내 숙소를 묻지 않는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드라이버가 전화를 바꿔준다. 메켈레의 ETT에서 온 전화다.(ETT는 생각보다 큰 여행사여서 각 도시별로 지사가 있다)

'여보세요'

'너 돈 냈어?'

'응, 아디스 아바바에서 현금으로 냈는데, 왜?'

'블라블라블라'

뭐라고 대답하는데 아직 에티오피아 억양에 익숙하지 않고 통회품질까지 좋지 않아 잘 못 알아듣겠다.

'뭐라고?' '너 말이 잘 안들려'를 반복하니 일단 알았다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차가 가고 있는 풍경을 보니 이제서야 상황파악이 된다. 지금 난 숙소로 가는게 아니라 투어에 참여한 것이다. 오마이갓!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여행사에서 투어 스케쥴을 설명할 때 이미 눈치를 채고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인원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출발한 ETT도 문제가 있다!라고 믿고 싶다. 이미 차는 떠났고 한참을 달렸다. 이제와서 나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이 차량은 한참을 뒤쳐져 몇몇 포인트를 건너뛸지도 모른다. 그리고 팀 구성원도 러시아 남자 암내만 빼고 썩 마음에 든다. 게다가 왠지 하루를 절약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가기로 마음먹는다.

 


첫번째 장소는 메켈레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이다. 아디스 아바바도 그랬지만 여기도 옅은 안개가 껴있어 도시 전경이 아주 깨끗하게 보이진 않는다. 나는 전망대에서 도시 전경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에티오피아 전체가 이러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 같다. 사진을 찍다가 드라이버에게 말했다.

'나 아까 받은 전화 잘 안들려서 끊었는데 이제야 왜 전화했는지 알겠어. 나 내일부터 투어 받기로 했는데 지금 여깄어. 어떡하지?'

'너 돈 냈어?'

'응, 아디스 아바바에서 냈지'

'그럼 됐어. 언제 출발하는건 상관없어.'

'어... 그래..'

이렇게 나의 다나킬 투어는 시작됐다. 하지만 3시간 밖에 못 자서 몸이 투어를 받을 상태가 아니다. 공항이랑 비행기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붙였던게 참 잘한 일이라 느꼈진다.


투어는 차로 장시간 이동한다. 따라서 이동 중에 자면 된다. 하지만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자게 되면 러시아 커플과 일본인이 어색해할까봐 몽롱한 상태로 눈만 뜨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러시아 형님 가슴에 있는 돈가방에서 발렌타인이 나온다. 가장 소중한 돈을 넣고다니는 가방인 줄 알았는데 발렌타인이라니… 역시 술 빼면 시체인 보드카국 로씨아. 커플끼리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쳐다본다. 왠지 자기들끼리 마시기엔 미안했나보다.

'너도 마실래?'

이걸 거절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다. 에라 모르겠다.

'응.'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차가 흔들려서 입에 한가득 들어간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마셨더니 다음 장소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타니 잠이 술술 잘 온다.

 

다음 장소에서도, 그 다음 장소에서도 러시아 커플은 맥주를 계속 마신다. 러시아 사람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많이 듣긴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알렉스한테 물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술을 참 좋아한다는 농담을 들었어.'

'응, 그건 농담이 아니야.'

 

중간중간에 마을이나 전망대에서 내린다. 마을에서 아이들과 한 컷. 메켈레 사람들의 첫인상은 굉장히 순박하다는 것이다. 나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전망대에 왔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투어는 차량 한 대 당 3~4명 씩 탄다. 우리는 이런 차량이 5대로 총 20명 정도의 인원이 투어를 같이 받았다.

 

운전사가 갑자기 차를 멈춘다. 옆에 카라반이 지나가고 있어서 사진을 찍으라고 멈춘 것이다. 다나킬 투어를 받으면서 카라반 행렬을 한 번도 못보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시작하자마자 보고 운이 좋다. 오늘 아침에 ETT 사무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떠올랐다. '너흰 운이 엄청 좋아. 너넨 투어기간 동안 카라반 행렬을 많이 볼 수 있을거야.' 그말이 사실이 된다. 나중에는 카라반을 보고도 사진을 찍지 않을 정도로 투어기간 내내 카라반 행렬을 많이 보았다.

 

중간중간에 이상한 곳에서 차를 세운다. 넓은 화장실이다. 남자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해결하는데 여자들은 저 멀리 바위 뒤에 숨는 등 아무도 안보이는 곳까지 가야만 한다.

 

Berhale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야채 볶음밥(?)이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주니 양껏 먹으면 된다. 다나킬 투어 기간 동안 이렇게 마을 중간중간에 들러 맥주나 음료수,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돈을 조금 챙겨오는 것이 좋다.

 

점심을 먹자 러시아 커플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의논한다. 그러더니 가게에서 맥주를 4병 들고 나와 차에 싣는다. 왠지 여행은 저렇게 해야 할 것만 같다.

 

이제부터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곳 중 하나라는 다나킬 지역에 접어든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해수면보다 100m 이상 낮은 곳이라고 한다.

 

Hamedela라는 지역의 지붕과 벽이 없는 숙소(라고 쓰고 노숙이라고 읽는다)에 도착했다. 여기에 짐을 풀고 카룸 호(Lake Karum)에 간다. 카룸 호는 우유니와 비슷한 소금호수로 숙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다.

 

카룸 호수에 도착하자 카라반 행렬이 끝도 없이 호수를 가로질러 온다. 이 호수 건너편엔 소금광산이 있고, 소금광산에서 운반하기 쉽게 사각형으로 절단한 뒤 낙타에 실어 나른다.


호수를 가로질러 석양을 보러 가는 길에 드라이버가 탄식을 내뱉는다. 창문 밖을 보니 한 낙타가 소금이 너무 무거웠는지 주저 앉고 말았다. 왠지 옛날 전래동화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아마도 물에 젖은 소금은 상품가치가 뚝 떨어질 것이다. 힘들게 캔 소금인데 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카라반 행렬을 본 뒤 물이 잔잔하게 깔린 석양 포인트에 갔다. 사람들은 여기를 '리틀 우유니'라고 부른다. 소금호수에 비치는 하늘이 마치 우유니 소금사막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성과정을 보면 카룸 호수와 우유니는 정반대다. 카룸 호수는 원래 홍해의 일부였다가 지각운동에 의해 북쪽 지역이 융기하면서 오히려 이쪽은 가라앉으면서 생겨난 반면, 우유니는 원래 바다였던 지역이 그냥 무식하게 위로 솟아 올라서 고지대에 생겨난 사막이다. 한 쪽은 가라앉아서 생기고, 한 쪽은 위로 솟아서 생기고.

아무튼 만약 내가 우유니에 가보지 않았다면 오늘 엄청 신날 뻔 했다. 하지만 난 우유니를 경험했고, 그것도 1년도 지나지 않아서인지 그냥 좋다라는 느낌만 받았다. 이제 유명한 곳은 거진 다 다녀봐서인지 놀라게 되는 역치가 높아진 것 같다.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에티오피아산 와인을 한 잔을 마시고 석양을 바라본다. 에티오피아산 와인은 그냥 그렇다. 내 옆에 있던 그리스인은 한 모금 마시더니 몰래 바닥에 버렸다.

 

아프리카에서 보는 첫 석양이다. 어느 대륙에 가도 석양은 참 매력있다. 러시아 커플이 절묘하게 잘 나왔다.

해가 지고 숙소에 돌아와 밤 늦게 저녁을 먹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접시에 모래가 가득하다. 마지막 순서로 밥을 받았더니 앉을 자리가 없다. 모래바람을 등지고 서서 먹는다. 모래를 먹지 않기 위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입에 구겨 넣는다. 의외로 파스타가 맛있어 한 그릇 더 먹었다. 저녁을 먹고 모두 모여 내일 일정과 아파르(Afar) 지역 및 민족에 대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내일 달롤에서 안전에 유의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유황에 빠진단다. 달롤은 도대체 어떤 곳일지 기대된다.

 

저녁을 먹고 좀 쉬려는데 알렉스가 자기가 쏘겠다며 맥주 마시러 가잔다. 쏘겠다니.. 아무리 둘러봐도 맥주를 살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인데.. 설마 아까 낮에 산 4병을 마시자는 건가? 그런데 갑자기 우리 차 운전사가 나타난다. 이미 알렉스가 운전사한테 술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봤나보다. 우리를 어둠속으로 한참을 끌고 가니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런 곳에 마을이 있었을 줄이야! 물어보니 운전사는 이 마을 출신이다. 다들 운전사를 반긴다. 이곳 사람들은 작은 식당 같은 곳에서 한데 모여 하나뿐인 티비를 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6-70년대 모습 같다. 한 남자는 맥주를 1.5L 물병에 넣어 물에 희석시켜서 마신다. 아마 맥주가 아까워 양을 늘리려고 그러는 것 같다. 우리는 3-4모금에 한 병을 다 마시는데, 그 시간 그 자리에 다른 남자는 더 많이 마시기 위해 물에 희석해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빈부격차를 느낀다.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면서 나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할 뿐이다.

 

우린 이제 다 마시고 가려는데 우리 운전사는 어느새 합류한 다른 운전사들 및 가이드와 끝없이 마시고 있다. 저렇게 마시고 내일 운전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는 운전사를 두고 어둠을 헤쳐 우리 노숙장소로 돌아온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해 모두 잠들어 있다. 대책없는 우리 4명.. 이만 얼른 닦고 하늘을 이불 삼아 침낭에 들어간다. 하늘에는 누가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별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이내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더니 날이 흐려져 별들이 구름 뒤로 모습을 감췄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안경을 벗고 눈을 감는다. 내일 만나게 될 달롤을 상상하며.

 

정보: 다나킬 투어 첫째날 일정

10:00 ETT 메켈레 사무실에서 출발

13:30 Berhale에서 점심 식사

15:30 Hamedela 캠핑장 도착

16:00 카룸 호수에서 카라반 구경

17:00 석양 포인트 도착

19:00 숙소로 복귀하여 저녁 식사 및 다음날 일정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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