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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바람에 밤새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몇 번을 깬 후에야 바람을 등지고 눕거나 침낭으로 얼굴을 가리면 모래를 들이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밤새 잠시 잠에서 깼을 때 카라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왜 이 밤길에도 저렇게 걸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5시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침낭이 젖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얼른 침낭을 접으려고 하지만 강한 바람에 애를 먹었다. 겨우 침낭을 다 접으니 비가 멈춘다. 오, 얄미운 하늘.^^ 물티슈로 세수를 했는데 찝찝하다. 물도 많은데 다음 노숙때는 물티슈로 닦아낸 후 물로 씼으리라.

 

아침으로 간단한 빵과 스크램블에그,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많아 일출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소금광산으로 향하는 카라반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운이 참 좋다. 그들은 소금을 날라 다른 카라반 떼에게 넘겨주고 오늘 다시 소금광산으로 출근하고 있다. 매일매일 호수를 가로질러 무거운 소금을 운반하는 고된 여정. 한국에 돌아가면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에 열심히 다녀야겠다.

일출을 보고 한시간 반 정도를 달려 달롤에 도착했다. 유황지역에 올라가기도 전에 빨강, 노랑, 흰색 등 화려한 색의 토양이 우리를 반긴다.

 

달롤은 정말 멋졌다.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땅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유황이 바람에 날린다. 달롤은 세상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곳이란다. 해수면 보다 무려 116m 낮다.

 

이런 사진이나 찍어주고 있고.. 다음 번엔 나도 누군가와 같이 올꺼다. 누군가와.. 여자라고는 안했다.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유황 가운데에 들어가니 유황냄새로 숨을 쉬기 어려웠다. 아마 오늘 마신 유황연기로 수명이 줄었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좀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 유황 가운데에 내가 있으면 좋겠다.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깊이.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가 나를 보고 소리친다. 내가 서있었던 지역은 언제 빠질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란다. 내 신발을 보니 이미 유황에 녹았다. 오마이갓. 만약 빠졌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달롤은 유독한 냄새를 풍기지만 사람을 가운데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한 이스라엘 할아버지는 자기가 이세상 여기저기를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의 광경은 어디어디 보다는 등급을 높게 쳐야할 것 같고, ABC, 이과수폭포와 동급인 것 같다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등수 매기기 놀이는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건 아니구나.

 

ETT의 투어에서는 달롯 지역을 관광할 때에는 군인들을 동행한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군인을 동행해야 하는 건 의무가 아니란다. 단지 자신들은 에리트레아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에리트레아는 30년이 넘는 내전 끝에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했다. 에르트리아가 독립하면서 에티오피아는 바다를 잃었다. 바다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데 에티오피아 입장에선 타격이 컸을 것이다. 아무튼 달롤지역은 에리트레아 국경과 인접해있는데 2012년 1월 에리트레아 군이 관광객 5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어, 에티오피아인 입장에서는 에리트레아를 신뢰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계곡 지형을 둘러본 뒤 소금 광산으로 향했다. 소금 광산에서는 여전히 많은 아파르족이 소금을 캐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소금을 운반하기 쉽게 사각형으로 다듬은 뒤 낙타에 싣는다. 그리고 그 소금을 내가 어제와 오늘 봤었던 카라반 행렬이 아프리카 북동부까지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이드는 뜨거운 태양과 이를 반사하는 하얀 소금 바닥으로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가장 더울 때에는 온도가 50도에 이르기까지 한다고 한다. 거기에 하루종일 쭈그려 앉아 일을 해야하니 여기 소금 광산에서 소금을 캐는 것이 이 세상 어느 일보다 힘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덥지 않아 일하기엔 좋은 날인 것 같았다. 나는 이왕 한 번 보는거 평상시 모습인 뜨거운 태양과 눈부신 땅 위에서 일하는 걸 보고 싶었다. 단 한 번 뿐일지 모르는 기회에 그들의 힘든 삶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날씨가 항상 오늘 같기를 바랄 것이다. 여행자가 되면 기회가 한정되어 있단 생각에 사람이 참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교환경제 시대엔 소금 채굴은 큰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금이 귀하지 않은 지금에도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가이드는 그들은 선조들의 삶을 이어나가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내가 소금을 캐고 있는 그들에게 가까이 가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을 달라고 한다. 나는 그들이 선조들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겐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소금광산을 끝으로 어제 점심을 먹었던 Berhale 지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내가 탄 차에 펑크가 난다.

 

차를 좋아하는 알렉스는 자기가 직접 나서 타이어를 교체한다. 알렉스는 소피아와 함께 세상 여기저기를 차량을 렌트해서 여행을 많이 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외국인이 차량을 렌트할 수 없어서 이렇게 투어를 받고 있는 거라고 한다.(하지만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외국인이 차량을 렌트해서 여행할 수 있다.) 그런데 차를 렌트하지 않으니 술을 끊임없이 마실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왠지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알렉스는 렌터카로 여행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Berhale 마을의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펜과 축구공을 달라고 조르긴 하지만 아이들은 순수한 의도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돈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망설였지만,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정말 좋아한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찍어줄 수 있다. 정말? 하지만 이내 자기 먼저 찍어달라며 아이들끼리 싸움이 일어난다. 그러면 나는 카메라를 거두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 시킨다.

한 아이가 축구공을 들고 있어 오랜만에 공놀이를 했다. 화려한 기술 몇 개를 보여주고 공도 같이 주고 받아주니 참 좋아한다. 난 이미 아이들로부터 슈퍼스타가 되어 있다. 아마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이들에겐 이런 화려한 기술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으리라.. 어느새 떠날 시간이 되어 차에 올라타자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한다. 외국인과 공놀이를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한 경험인가보다. 나는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악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행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공놀이를 할 줄 아는 것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었는지도 모른다.

Berhale에서 점심을 먹고 쉬켓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2일짜리 투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헤어진다. 나에게 그리스 축구는 미래가 없다며 열변을 토하던 그리스인 체육 선생님도 이곳에서 떠났다.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잔다고 하길래 핫샤워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콜드샤워도 꿈꿀 수도 없는 열악한 숙소였다. 나는 큰 물통에 담긴 물을 컵으로 담아 끼얹으며 겨우 세수와 머리만 감았다. 내가 다 씼고 나오자 이스라엘 할머니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미 샤워실 안의 물을 다 써서 밖에 있는 15kg정도 되는 물을 옮겨주었더니 정말 착한 코리안이라며 여기저기 칭찬을 하고 다녔다. 저녁을 먹을 때에는 내 나이를 묻더니 믿기지 않는다며 내 피부에 대한 립서비스도 추가해주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물 30kg을 옮겨줄 것이다.

 

투어 인원은 약 20명 정도 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나는 아마 이스라엘엔 지금 시점에 연휴가 있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멀지 않은 에티오피아로 여행을 온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그 할머니한테 물으니 에티오피아의 랄리벨라는 아프리카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데, 이번 주 목요일에는 에티오피아력으로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아디스 아바바에서 시티 투어를 하면서 들었던 사실인데 잠시 잊고 있었다. 이번 주 목요일은 크리스마스다! 나는 다나킬 투어 이후 악숨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순간 랄리벨라로 가야될 지 고민됐다. 하지만 이내 랄리벨라의 모든 호텔이 이미 예약이 다 찼고, 모든 물가가 '엄청' 비싸다는 정보를 듣고 그냥 원래 일정대로 악숨으로 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가 랄리벨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깐.

 

한편 일본인 요시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아프리카도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120개국을 넘게 여행했다며 나에게 여권 스탬프를 자랑한다. 그러다 눈치없이 한국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할 수 있냐며 묻는다. 옆에 이스라엘 청년들이 듣고 있는데.. 내가 작은 목소리로 가자 지구는 못 간다고 했더니, 갑자기 이스라엘 청년이 가자지구는 왜 못 가냐고 묻는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가자 지구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발끈한다. 전혀 위험하지 않단다. 미디어가 그렇게 보도해서 그런거라며 강하게 말한다. 하긴.. 우리나라도 외국에서 보면 북한이 대포 쏘고, 몰래 지뢰 설치하고, 미사일 쏘는 등 안전하지 않은 나라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 아무튼 나는 잘 알겠다며,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기 때문에 나는 허락 없이는 못 간다고 얼버무린다. 하.. 요시.. 40살이라면서.. 눈치 좀..ㅠㅠ

 

흰 색 옷을 입은 남자가 우리의 가이드다. 20명 정도 되는 인원에 가이드는 단 한 명 뿐이어서 설명을 놓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 가이드의 열성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디스 아바바에서의 일처리 때문에 ETT 여행사를 좋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 가이드 때문이라도 ETT에서 다나킬 투어를 받을 것을 추천한다. 물론 다른 가이드가 걸릴 수 있다. 순전 운이다. 우리는 저녁 식사 후 한데 모여 오늘 봤던 것에 대한 설명과 아파르 족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 공유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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