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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 11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뒤 12시에 출발해서 우후루 피크(Uhuru peak,5895m)를 찍고 호롬보 허츠까지 내려간다.

나는 고산병이 불면증으로 몰려서 잠을 한숨도 못잤다.=_= 차라리 머리가 아픈대신 잠을 자고 싶었다. 같은 방에서 코를 골며 자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ㅠㅠ 11시가 되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잠은 다잤다 싶어 일어나서 준비하고 요리사가 가져다주는 아침을 먹었다.

준비를 다하고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옷을 몇 겹 입었냐고 물었다. 3개 입었다고 하니 하나 더 입으라고 하여 젖어서 안입었던 옷을 한겹 더 입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엄청 추워졌다. 밤이라서 더 추웠던 것 같다.

키보 허츠에 올 때까지는 내가 가이드보다 앞장섰지만 키보부터는 그럴수 없었다. 정말 깜깜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이드의 뒤를 따라 천천히 한걸음씩 올랐다. 뽈레 뽈레. 이보다 더 느리게 갈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리게 걸었다. 처음에는 그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 속도도 나에겐 벅찼다. 어느 순간부터 어지럽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휘청휘청댔다. 스틱이 없었다면 몇 번이나 넘어졌을 것이다. 숨은 아무리 깊게 들이마셔도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한걸음에 깊은 숨을 두세번씩 쉬었다. 고산병이 제대로 온 것이다. 아마 잠을 못자서 몸이 피로해서 그런것 같다.

날씨는 정말 순식간에 변했다. 맑아서 별이 잘 보였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고, 비가 우박으로 변했다가 구름이 물러가기를 반복했다. 마치 전래동화 해님과 바람이 떠올랐다. 나는 나그네.

잠시 쉬고 싶었지만 역시 신발이 문제였다. 비가 오고 우박이 쏟아지는 동안 신발이 젖었고 잠시만 움직이지 않아도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너무 추웠다. 쉬고 싶지만 추워서 쉴 수 없는 사면초가에 빠졌다.-_- 나는 얼어죽지 않기위해 반강제적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을 너무 조금 먹었는지 너무 배가 고팠다. 왠지 배가 고파서 고산증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루샤에서 준비해 온 쵸코바(스니커즈)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재앙이 시작됐다. 엄청 피곤한 상태에서 배에 음식이 들어가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미친듯이 졸렸다. 졸면서 걷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도 했다.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 했는데도 잠이 안깬다. 계속 졸면서 걸었다. 그런데 졸리니 머리 아픈건 사라졌다. 좋아해야 하는건가..

나만 쉬지 않고 걷다보니 어느새 내가 제일 선두에 섰다. 그리고 선두에 서는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지를 체험하게 됐다. 깜깜한 밤. S자로 굽어진 꼬불꼬불한 길. 아, 이제 다 올라온건가? 라고 생각하면 길이 또 있고, 이제 진짜 끝인가? 라고 생각하면 길이 또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쳤다. 안돼겠다. 포기해야겠다. 난생 처음으로 산에 오르는 중간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에게 못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길만스 포인트가 기적적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우후루 피크에 오르는 길에는 세 개의 포인트가 있다. 길만스 포인트(Gilman's ppoint 5685m),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 5756m), 그리고 최고봉인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

길만스 포인트를 보니 갑자기 힘이 솟았다. 200m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물론 2시간 정도 더 걸어야하지만..

하지만 힘이 솟는다고 해서 졸음이 쫒아지거나 고산병이 없어지는건 아니었다.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또 걷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걸은 것은 아니다. 난 그냥 졸았는데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내 안의 또다른 나는 참으로 강인한 존재였다. 한참을 걸으니(=졸았더니) 스텔라 포인트가 나왔다. 너무 힘들어서 사진기 꺼낼 힘도 없어서 사진은 패쓰.. 그리고 또 한참을 걸었다.

날씨는 안좋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짙게 끼여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보였다. 뭐지? 내가 일등으로 걷고 있었는데? 다른 루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최고봉인 우후루피크에 도착한 것이다!

해가 떠올랐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흐려 해를 못보는 듯 했다.ㅠㅠ

뿌연 일출로 만족하고 내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기적적으로 구름이 걷혔다. 그렇게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구름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음력으로 1월 1일, 설날이었다. 일부러 설날에 맞춰서 올라간 건 아닌데 생각지도 못하게 딱 떨어졌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많았던거구나..) 나는 몸 건강히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백수 좀 탈출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킬리만자로는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지만 빙하를 품고 있다. 역시 킬리만자로의 위엄! 하지만 빙하는 생각보다 작았다.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이 무색할 정도로..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1912년 관측 이래로 85%가 녺아 없어졌다고 한다.ㅠㅠ 그리고 이런 추세라면 2020년대에는 킬리만자로의 모든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요즘 엘리뇨 때문에 세계가 이상기후로 난리던데 빙하가 다 녺기 전에 지구가 다시 정상 온도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고,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구름 위에서 걸었다)

내려오면서 사진을 안찍었던 스텔라 포인트에 멈춰 사진도 찍고,

눈 속에 파뭍히는 장면을 기대했으나 너무 추워서 딱딱하게 얼어버린 눈 위에 벌렁 눕기도 하고,

거대한 고드름도 보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도 쉽진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산에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게 더 어렵다.
다리가 피로하고 무릎도 아프고 해서 천천히 내려왔다. 이제 가이드는 뽈레 뽈레를 외치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뽈레 뽈레 내려갔다. 그리고 키보 허츠로 돌아가면서 밤새 내가 이렇게나 긴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밤새 내가 걸었던 길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겨우 키보 허츠로 돌아와서 잠시 쉬고 호롬보 허츠로 향했다. 오늘은 정말 강행군이다. 자정부터 오후까지 계속 걷는다. 킬리만자로를 준비하는 분들은 이 날에 대한 대비를 잘하셔야 할 것 같다.
키보 허츠에서 잠시 쉬는 동안 요리사가 점심을 주었지만 거의 먹을 수 없었다. 내가 거의 안먹고 돌려주자 요리사가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호롬보로 내려오는 길에 가이드에게 그런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건 매우 흔한 일이라고 한다. 정상찍고 내려오면 대부분 과일과 물만 먹고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키보 허츠에서 쉴 때 이란 성님들의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내 산소포화도를 측정해봤더니 49%가 나왔다. 죽는건가.. 내 고산병이 심하긴 했었나보다. 사실 고산병 증상이 심한데 나처럼 무리하게 오르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다. 킬리만자로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빙하도 2020년까지는 있을꺼니까 반드시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 몸이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되면 다음 기회로 미루자.

내려오는 길 내내 비가 내렸지만 호롬보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전래동화가 생각난다. 전래동화.. 나그네는 참고 견뎌야 한다...

호롬보에서 저녁을 먹는데 이란 성님들이 내 옆에서 식사를 했다. 이란 성님들은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빨리 내려갔다며 나보고 strong man이라며 우쭈쭈 해줬다. 하지만 난 겉으로 보이는만큼 strong 하지 않다. 고산병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감기에 걸려 너무 아팠다. 그저 얼굴만 웃고 있을뿐..ㅠㅠ

호롬보의 일몰이 이렇게 예뻤나?

킬리만자로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오늘 하루는 길었고 많은 걸 느꼈던 날이다. 단순히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곳에 올르는 것 이상으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나는 선두에 가고 있었으나 목표지점에 거의 도달한 줄 모르고 포기하려고 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이 정말 힘들고 미래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일 때, 그 때가 힘든 순간이 거의 지난 때이다. 그 순간만 포기하지 않고 넘기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킬리만자로는 나에게 끈기와 긍정적인 마음을 주었다. 고마워, 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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